[주일설교, 2025.10.12, 김진영 담임목사] 요압의 죽음: 죄와 죄책
1. 기본 정보
| 항목 | 내용 |
|---|---|
| 일자 | 2025년 10월 12일 (주일) |
| 설교자 | 김진영 담임목사 (서울중앙교회) |
| 설교 제목 | 요압의 죽음: 죄와 죄책 |
| 성경 본문 | 열왕기상 2장 5-6절, 28-35절 |
| 함께 읽은 말씀 | 출애굽기 21:14 / 요한복음 1:29 / 이사야 53:6 |
| 영상 | https://youtu.be/WBaXEXHAG9Q (설교 약 35분 + 기도) |
작성 근거: 유튜브 영상의 한국어 자동 자막 전체를 읽고 정리했습니다. 자동 자막은 고유명사와 교회 용어를 자주 틀리게 받아 적으므로(예: "아마샤"→아마사, "기부원·기부음"→기브온, "서로아의 아들들"→스루야의 아들들, "참여의 기도"→참회의 기도, "중부·중고의 기도"→중보의 기도) 성경 본문과 문맥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2. 한눈에 보는 설교의 흐름
| 순서 | 내용 |
|---|---|
| ① 오해 | 요압의 죽음은 솔로몬이 정적을 제거한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나 같은 편에 섰던 아비아달은 살려 주었다. |
| ② 진짜 이유 | 요압의 죄는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살인죄다. 다윗은 힘이 약해 처벌하지 못했고, 30년 뒤 솔로몬에게 유언으로 당부했다. |
| ③ 제단 뿔 | 요압은 기브온으로 도망해 제단 뿔을 잡았지만, 고의로 살인한 자는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출 21:14). |
| ④ 첫째 교훈 | 사람은 넘어가도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지 않으신다. 믿음으로 행한 작은 선행도 잊지 않으신다. |
| ⑤ 권면 | 오래 품은 죄를 회개하라. 사탄은 숨긴 죄를 터뜨려 파멸시키고, 성령님은 죄를 깨닫게 하여 자유하게 하신다. |
| ⑥ 둘째 주제 |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용서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죄와 회개와 죄책의 문제. |
| ⑦ 아간 | 아간은 회개했지만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죽었다. 칼빈의 주석. "눈에는 눈"은 책임의 한계다. |
| ⑧ 위험한 생각 | "내가 진심으로 회개했으니 용서받았다"고만 생각하면 중요한 은혜를 놓친다. |
| ⑨ 나사로 | 썩어 가던 시체가 먼저 살아나야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다. 회개도 하나님이 먼저 주신 은혜에서 나온다. |
| ⑩ 어린 양 | 죄의 책임을 내가 질 수 없어 양에게 넘겼듯이, 하나님이 내 죄책을 예수님께 돌리셨다(요 1:29, 사 53:6). |
| ⑪ 중보 |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근거로 나를 위해 간구하신다. |
| ⑫ 기도 응답 | 기도 응답의 근거는 나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예수님이다. |
| ⑬ 결론 | 예수님의 보혈이 덮지 못할 죄는 없고, 성령님의 능력은 죄의 세력보다 강하다. 겸손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기도하자. |
3. 결론 — 예수님의 보혈이 덮지 못할 죄는 없다
-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별 볼 일 없어도, 내가 붙들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무시하지 않으신다.
- 내 죄가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덮지 못할 죄는 없다.
- 내 안에 습관적인 죄가 있고, 숨기고 살아가는 죄가 있다. 예수님은 죄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죄의 세력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다. 성령님의 능력은 죄의 세력보다 더 강력하다고 약속하시고 말씀하신다.
- 믿음 생활은 끝까지 죄와의 싸움이다. 처음에는 내 바깥에 있는 죄가 보인다. 신앙생활이 깊어지고 성장하면, 내 바깥의 원수도 문제지만 그 원수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내 안의 미움과 질투가 진짜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 내 안의 미움과 시기와 질투와 싸우다 보면 번번이 진다. 이길 때도 있기는 한데 정신을 차리고 보면 번번이 지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라는 은혜를 주셨고, 내 힘으로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을 우리 가운데 보내 주셨다.
- 나는 죄를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성령님이 죄하고 싸워서 지면 됩니까? 하나님께서 마귀와 싸워서 지면 그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믿음을 주셨고,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 "이것은 정말로 복음이고 믿으셔야 됩니다." 살아온 만큼 우리에게는 죄가 있고, 품고 있는 만큼 내 안의 죄는 강하다. 그러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에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
- 그러므로 회개의 기도든, 질병과의 싸움이든, 일용할 양식이든, 하나님 앞에서의 선한 열심이든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그러나 담대하게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자. 기도의 은혜를 경험하면서 한 주 한 주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
4. 함께 드린 기도 제목
- 품고 있는 죄 — "하나님, 혹시 제 안에 요압처럼 30년 가까이 회개하지 않고 안고 가는 죄가 있다면 깨닫게 해 주십시오. 성령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 죄를 회개하고, 그 죄의 세력에서 자유하고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십시오."
- 기도하는 은혜 — "하나님, 범사에 항상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저의 입술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저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하는 은혜를 주십시오."
마무리 기도: 깨달은 대로 전한 말씀을 들은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성령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나도 모르게 품고 있는 죄와 오랫동안 익숙하게 가지고 있는 죄를 깨닫게 하시고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모든 죄를 내어놓을 때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흘리신 보혈의 능력을 확신하며 경험하게 하시기를 구했다. 또 기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일용할 양식과 질병에서의 회복과 연약함 가운데서의 강함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예수님의 이름을 붙들고 기도하게 하시기를, 우리의 죄를 볼 뿐 아니라 십자가 보혈의 은혜와 사랑과 능력을 바라보는 믿음을 더해 주시기를, 죄 많은 세상에서 안팎의 죄를 마주칠 때마다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를, 이번 한 주간 각자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의 통로로 쓰임받기를 구하는 기도.
5. 성경 본문 (열왕기상 2:5-6, 28-35) 줄거리
본문은 개역개정 성경의 내용을 풀어서 요약한 것입니다. 정확한 문장은 성경을 직접 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구절 | 내용 |
|---|---|
| 2:5 |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솔로몬에게 당부한다.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자기에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안다. 그는 그들을 죽여 평화로운 때에 전쟁의 피를 흘렸고, 그 피를 자기 허리띠와 신에 묻혔다. |
| 2:6 |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의 백발이 평안히 스올(무덤)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
| 2:28 | (아도니야가 처형되고 아비아달이 파면된) 소식이 요압에게 들렸다. 요압은 전에 압살롬은 따르지 않았으나 아도니야를 따랐으므로,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았다. |
| 2:29 | 그 일이 솔로몬 왕에게 보고되었다. 왕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서 그를 치라"고 했다. |
| 2:30 | 브나야가 장막에 이르러 "왕께서 나오라 하신다"고 전하자, 요압은 "아니다. 내가 여기서 죽겠다"고 대답했다. 브나야가 돌아가 왕에게 그대로 보고했다. |
| 2:31 | 왕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를 죽여 묻어라. 그리하여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아버지의 집에서 없애라. |
| 2:32 |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실 것이다. 그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 곧 이스라엘 군사령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사령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내 아버지 다윗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칼로 죽였기 때문이다. |
| 2:33 | 그들의 피는 영원히 요압과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왕위에는 여호와께로부터 오는 평강이 영원히 있을 것이다. |
| 2:34 | 브나야가 올라가서 요압을 쳐 죽였고, 요압은 광야에 있는 자기 집에 묻혔다. |
| 2:35 | 왕이 브나야를 요압 대신 군사령관으로 세우고, 제사장 사독을 아비아달 대신 세웠다. |
6. 설교 내용 정리
6-1. 도입 — 성경은 정권이 얼마나 견고해졌는지를 말하려는 책이 아니다
요압이 죽은 사건을 보면 "솔로몬의 왕국이 든든하게 세워져 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성경은 솔로몬의 정권이 얼마나 견고해졌는가를 주로 말하는 책이 아니다.
- 성경은 우리의 생활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 어떻게 역사하시고 은혜 베푸시는지를 보여 준다.
- 그 관점 없이 요압의 사건을 보면 오해할 위험이 있다.
6-2. 흔한 오해 — "아도니야 편에 섰기 때문에 죽었다"
요압이 죽은 것은 솔로몬 편에 서지 않고 아도니야 편에 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목사님은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씀도 아니다"라고 하셨다.
- 아도니야 편에 섰다는 이유로 죽어야 한다면 대제사장 아비아달도 솔로몬이 죽였을 것이다.
- 그런데 솔로몬은 아비아달을 아도니야처럼 죽이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 "당신은 우리 아버지와 함께 고생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당신을 죽이지 않고 파면하겠습니다."
- 아버지 다윗과 함께 고생하며 다윗 왕국을 세운 공로를 따지면 요압이 훨씬 크다. 아비아달을 살려 주었다면 요압은 살려 주고도 남을 만한 사람이다.
- 그런데 솔로몬은 아비아달은 살려 주고 요압은 죽였다.
그래서 "확실히 솔로몬이 정치적이구나. 군사력을 가진 정적을 제거했구나"라고 오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분명하게 말한다.
6-3. 요압의 진짜 죄 —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살인죄
요압을 죽이는 것은 다윗의 유언과 같은 명령이다.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요압을 다윗이 죽이라고 한 이유는 분명하다. 요압은 전쟁 범죄보다 더 심한 죄를 지었다.
아브넬을 죽인 일
- 7년 동안 나라가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북쪽은 사울 왕의 아들 이스보셋을 따랐고, 남쪽 유다만 다윗을 따랐다. 7년간 싸웠다.
- 북쪽의 실권자 아브넬이 형세가 기울어 가는 것을 보고 "전쟁 없이 하나가 되자"는 마음으로 평화 협상을 하러 다윗을 방문했다. 친선을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 됨을 위해, 평화의 목적으로 온 것이다.
- 그때 요압은 전쟁터에서 자기 동생이 아브넬에게 죽은 원수를 갚으려 했다. 화평한 척, 친절하게 안내하는 척하다가 아브넬을 대낮에 암살해 버렸다.
- 이것은 범죄다. 목사님은 "살인죄는 지금도 유효 기간이 없다"고 하셨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미제 사건이던 것이 DNA 감정을 통해 풀려, 3, 40년 동안 멀쩡하게 숨어 살던 범죄자가 체포되고 정의가 실현되는 기사를 간혹 본다.
아마사를 죽인 일
요압은 살인자다. 한 사람만 죽인 것이 아니다. 경쟁심 때문에 아마사도 백주 대낮에 살해했다.
다윗의 탄식과 30년
-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법적 정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 아브넬이 죽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께 탄식했다. "하나님의 법에 의하면 요압은 당장 죽여야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스루야의 아들들의 권력이 저보다 셉니다. 제가 요압에게 살인죄를 물어 처형하기에는 제 손이 너무 약합니다. 하나님, 저 살인죄를 묵과하지 마시고, 저는 연약하고 부족해서 못 하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저 죄를 처벌해 주십시오."
-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30년 동안 요압은 건재했다. 권력의 최고 자리에서 군사력과 번영을 누리며 살았다. 그러다가 말년에 아마사까지 그렇게 죽였다.
- 다윗은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다스릴 왕 솔로몬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 요압의 죄를 넘어가지 마라. 나는 어찌할 수 없어서 해결하지 못하고 넘어가지만,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대낮에 무고한 사람,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비참하게 죽인 요압의 죄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마라.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보응을 받도록 해라." 이것이 죽음을 앞둔 이스라엘 왕 다윗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6-4. 제단 뿔을 잡은 요압, 그리고 하나님의 법
요압이 죽는 장면을 보라고 하셨다.
- 요압은 목숨을 건지려고 기브온까지 도망한다. 10km쯤 되는 길을 가서, 모세 시대에 만든 제단의 뿔을 붙잡고 목숨을 구걸한다.
- 아도니야가 처음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곳으로 도망가 제단 뿔을 잡았다. 그때 솔로몬이 "형님, 앞으로 처신을 의롭게 하십시오. 그러면 죽으실 일이 없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요압은 그것을 알았을지 모른다.
- 요압도 똑같이 했다. 목사님은 요압의 속마음을 이렇게 풀어 주셨다. "나는 주동자가 아닙니다. 주동자는 아도니야이고 나는 따랐을 뿐입니다. 아도니야에게도 기회를 주셨듯이 나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생명을 보호해 주십시오."
- 그럼에도 솔로몬은 요압의 간청을 듣지 않는다. 요압의 죄는 아도니야 편에 서서 반란을 일으킨 죄가 아니라, 온 이스라엘이 다 아는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살인죄이기 때문이다.
(회중과 함께 출애굽기 21:14 낭독)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출 21:14)
-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요압은 고의로, 계획해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다. 그런 사람은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고 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대한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되어 있다.
- 솔로몬이 요압을 죽인 일은 결과적으로 정적을 제거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성경은 요압이 죽임을 당한 것을,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죗값을 물어 심판하신 것이라고 기록한다.
솔로몬이 문제 삼은 것
솔로몬은 요압이 아도니야 편에 선 것을 심각하게 문제 삼지 않는다. 문제 삼은 것은 한 가지다. 반드시 회개해야 할 죄를 30년 동안 회개하지 않고 무시한 것이다. "이제는 아무도 내 죄를 물을 사람이 없다. 다윗도 묻지 않았고, 다윗이 죽었으니 그 누구도 내 죄를 건드릴 사람이 없다." 그렇게 영적으로 교만하고 회개하지 않은 요압의 죄를 하나님은 결코 넘기지 않으셨다.
6-5. 첫째 교훈 — 하나님은 죄도, 믿음의 선행도 그냥 넘기지 않으신다
- 세상 나라에서든 심지어 교회에서든, 어떤 사람이 지은 죄가 처벌받지 않고 넘어갈 때가 있다. 분명히 심판과 처벌을 받아야 하는데 타협하거나, 간과하거나, 심지어 잊어버리고 넘어간다.
- 그러나 의로우시고 정의로우신 하나님은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신다.
반대로, 믿음의 선행도 잊지 않으신다
-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믿음으로 선을 행하며,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며 믿음으로 살려고 한 일들이 있다. 사람들이, 교인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가 있다. 사소하게 여기고 하찮게 여길 때가 있다.
- 그러나 예수님은 "너무 더운데 드릴 것이 냉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도와드립니다" 하며 소자에게 행한 작은 선행을 결단코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
권면
요압의 죽음을 생각할 때, 내 안에 오랫동안 품고 있는 죄가 있다면, 성령님께서 회개할 마음을 주실 때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나와 그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경험하는 은혜의 자리로 속히 나오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6-6. 사탄이 죄를 다루는 방식, 성령님이 죄를 다루시는 방식
목사님은 "죄는 하나님께서도 정리하시고, 사탄도 내가 품고 있는 죄를 정리한다"고 하셨다. 어린 시절부터 모태 신앙으로 교회에서 자라며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고, 또 자신의 경험으로 확인한 것이라고 하셨다.
| 내가 숨기고 있는 죄를 다루는 방식 | |
|---|---|
| 사탄 | 숨긴 죄를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기회라고 여겨 그 죄를 이용한다. 나를 파괴하기 가장 좋을 때, 결정적인 순간에 터뜨린다. 더 이상 회개하지 못하게 하고 내 인생과 삶을 파멸시키는 방식으로 공격한다. |
| 성령님 | 내 안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죄에 대해 근심하게 하신다. 그 죄에서 나를 자유하게 하신다. 죄가 가져오는 파괴에서 내 생명을 보호하고 다시 살리는 방식으로 죄를 다루신다. |
- 요압처럼 "아무도 모른다. 알아도 아무도 손대지 않는다"는 영적 교만과 죄에 대한 무감각 속에서 죄와 함께 살지 말라.
-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 성령님께서 불현듯 깨닫게 해 주시는 죄와 회복해야 할 관계가 있다면, "지금 성령님께서 나에게 회복의 은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부활의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회개의 때, 회개의 은혜를 결코 놓치지 말라.
하나님의 정의와 마지막 심판
- 믿음의 눈으로 돌아보면 하나님은 보응하실 자에게 보응하시고 은혜 베푸실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 하나님은 지금도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죄를 범하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 정의가 마지막 심판 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갔을 때 하나도 남김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을 우리로 경험하며 믿음으로 살게 하신다.
- 요압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은 정말로 그런 하나님이시다. 죄를 품고 살지 않아야겠다" 하고, 작은 일이지만 말씀에 순종하며 선을 행하고 믿음으로 사는 일에 한 주간 열심을 내자고 하셨다.
6-7. 둘째 주제 — 진심으로 회개했다면 용서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요압의 죽음에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할 두 번째 주제가 있다.
- 요압이 기브온까지 도망해 성막의 제단 뿔을 잡았다면, 진심으로 회개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를 것이라고 하셨다.
-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죄를 정말로 뉘우치고 회개했다면, 용서해 주어야지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정말로 회개하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는가?
- 이것은 죄와 회개와 죄책(죄에 대한 책임) 에 관한 문제다. 복잡한 내용이므로 쉽게 설명하겠다고 하셨다.
6-8. 아간의 회개와 죽음 — 칼빈의 주석
목사님은 유학하던 때에 칼빈의 여호수아 주석과 칼빈의 다른 글들을 읽으셨다. 거기에 아간의 범죄에 대한 주석이 있다.
- 아간은 큰 죄를 지었다. 목사님은 회중에게 물으셨다. "아간이 회개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여호수아가 죄를 추궁했을 때 아간은 온 백성 앞에서 자기 죄를 분명하게 회개했다.
- 그런데도 아간은 자기 죄에 대한 죄책을 감당했고, 그와 모든 가족이 다 죽었다.
- 죄는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 용서가 없다. 그러면 내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고백하면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죄책조차도 다 사라지는가? 그렇지 않다.
- 아간의 범죄 때문에 이스라엘의 무고한 용사들이 아이 성을 공격하다가 죽었다.
율법의 원리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
- 아간은 죄가 드러났을 때 하나님 앞에서 진심으로 인정하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죽임을 당했다. 그것이 율법의 원리다. 사람의 생명을 해쳤다면 해친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것으로 책임을 지는 것이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생명에는 생명"은 처벌의 한계를 정한 것이다. 눈을 다치게 한 사람은 눈까지만 다치게 할 수 있다.
- 목사님이 드신 예: 노예가 주인 아들의 눈을 다치게 했다. "노예 자식이 주인 아들의 눈을 다치게 했으니 너는 죽여 버리겠다, 생명으로 갚게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맞지 않는다. 그 경우에도 책임은 다친 눈만큼으로 딱 한계를 그어 놓으신 것이다.
칼빈의 해석
- 칼빈은 그 구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셨다. "아간을 보십시오. 자기 죄를 진심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육체로는 죽임을 당했으나 그의 회개로 말미암아 영으로는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 그것이 종교개혁자들의 해석이었다. 그 해석 속에서 기억할 것이 있다. 아간의 죄에 대한 용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뿐 아니라 그 죄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때 주어졌고, 그래서 육체로는 죽었으나 영혼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6-9. "내가 진심으로 회개했으니 용서받았다"는 생각의 위험
회개의 은혜가 특별히 큰 때가 예배 때다. 예배의 자리에 나와 십계명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고,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의 사죄의 선언을 듣는다.
- 그때 "내가 오늘 정말 진심으로 회개했다. 이 회개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셨다"고 하면서, "내가 진심으로 회개했기 때문에 용서하셨다"고만 생각하면 중요한 은혜를 놓친다. 대단히 조심해야 한다.
목사님이 그려 보이신 장면
어떤 교인이 유난히 은혜를 받아 회개의 기도가 너무 간절했다. 평소와 차원이 다른 회개의 심령을 주셔서 자기가 생각해도 진심으로 회개했다. 흘리지 않던 눈물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였다. 이 은혜에 감사해서 회개의 감사 헌금까지 드렸다. 그리고 집에 가서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는 마음도 주시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헌금까지 드리게 하셨으니, 내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감사 헌금을 보시고 오늘은 확실하게 내 죄를 용서해 주셨을 것이다."
- 그렇게 회개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중요한 것을 놓친다.
- 그렇게 회개하면 신앙생활이 굉장히 위험한 지경에 빠질 수 있다.
6-10. 나사로의 부활로 기억하는 회개의 은혜
회개와 죄 사함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과 연결해 기억하라고 하셨다.
- 예수님께서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시체에서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셨다.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부르셨다. 나사로가 그 음성을 듣고 나왔다.
- 이것을 "나사로가 예수님의 소리를 듣고 나왔다"고만 보듯이, "내가 간절히 회개했기 때문에 그 회개를 들으시고 용서하셨다"고 가면 문제가 생긴다.
- 썩어 가는 시체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나사로가 "나오라"는 말씀을 들으려면 먼저 한 가지 기적이 있어야 한다. 썩어 가던 시체가 생명 있는 사람으로 바뀌는 기적이다. 그래야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
- 나사로는 음성을 듣고 나왔지만, 그 음성을 듣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있다.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 놓으신 은혜다. 이 은혜는 나사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나사로는 그 은혜를 근거로 소리를 듣고 나왔다.
회개의 기도도 똑같다
- "하나님, 정말 제가 잘못했습니다. 뉘우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진심으로 회개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
- 그러나 나의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에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이 있다. 죄의 책임,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 책임을 져야 하는데 내가 질 수가 없다.
6-11. 어린 양 — 죄책을 대신 진 제물
(회중과 함께 요한복음 1:29, 이사야 53:6 낭독)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29)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제사드리러 갈 때 흠 없고 점 없는 깨끗한 어린 양을 데리고 간다. 똑같은 원리다. 양을 데리고 가서 하나님 앞에 자기 죄를 다 고백한다. 죄를 깨닫고 고백하지 않으면 죄 사함이 없다.
곁들인 권면 —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
- 교인들 가운데 "이 죄를 깨닫고 회개합니다"라고 기도한 뒤 약간 찜찜해서 "제가 죄인 줄도 모르고 지은 죄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알고 지은 죄뿐 아니라 모르고 지은 죄까지 다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가 있다. 목사님은 모르고 지은 죄가 "예, 있습니다"라고 하셨다.
- 그러나 모르고 지은 죄는 그렇게 기도한다고 용서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에서 나를 용서하실 때에는 "그것이 죄였구나" 하고 깨닫게 하는 은혜를 먼저 주신다.
- 그러므로 지금까지 그렇게 기도해 왔다면 한 걸음만 더 나가라. "모르고 지은 죄까지 다 회개했다"고 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하라. "하나님, 제가 반드시 회개해야 하지만 죄인 줄 몰라서 회개하지 못하고 여전히 품고 있는 죄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십시오."
- 우리는 죄를 구체적으로 짓는다. 마찬가지로 회개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자.
제사에서 일어나는 일
- 죄를 다 고백한 다음,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양에게 전가한다. "이런 죄를 지어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이 죄에 대한 책임을 양에게 돌립니다." 그리고 양을 죽인다.
- 양을 누가 죽이는가? 제사장이 죽이지 않는다. 양을 데리고 간 내가 죽인다.
- 양은 억울하다. 자기는 지은 죄가 없는데 주인이 데리고 오더니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고 잘 들지 않는 칼로 죽인다. 각을 다 뜬다.
- 그 양의 죽음과 비명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내 죄를 용서해 주신다.
6-12.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회개 — 죄책을 지신 예수님, 중보하시는 예수님
- 주일에 참회의 기도를 드리고, 가정이나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회개의 기도를 한다. 회개의 기도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간절히 진심으로 회개한다 해도, 하나님께서 나의 회개 기도를 들어 보시고 그것 때문에 용서하시는 법은 없다.
-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기도하는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참회의 기도의 내용을 목사님은 이렇게 풀어 주셨다.
"하나님, 제가 이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은 이 죄에 대한 죄책을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하신 예수님에게 다 돌리신 것을 믿습니다. 어린 양이 죽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제가 당해야 할 심판과 저주를 대신 다 받으신 것을 믿습니다. 그 보혈을 보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간절히 구하니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 안에서 기도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신다.
예수님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가
-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거기서 나를 위해 24시간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신다.
- 예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를 가지고 의로우신 하나님께 간구하신다. "하나님, 지금 저 교인이 자기 죄를 회개하며 죄 사함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받아야 할 죄에 대한 책임과 심판을 제가 십자가에서 대신 다 받았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십자가에서의 저의 죽음을 보시고 저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 하나님은 예수님의 중보 기도와 십자가의 보혈을 보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용서해 주신다. 이것이 회개의 기도를 통해 주시는 은혜다.
6-13. 기도 응답의 근거는 나의 열심이 아니다
이 원리는 회개의 기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기도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30일 작정 기도를 했다. 처음으로 철야 기도를 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하나님께서 더 잘 들어 주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 예수님은 그런 마음이 들 만큼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신다. 구하라, 찾으라, 열릴 때까지 두드리라. 금식하며 작정하며 은혜를 구하고, 불의한 재판관에게 날마다 찾아가 간청한 과부처럼 지치지 말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신다.
- 그러나 기도 응답의 근거는 나의 열심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에 있다. 불의한 재판관도 귀찮아서 들어주는데, 하늘 아버지께서는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고 들어주신다. 그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 예수님의 이름과 십자가의 보혈을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들어주신다. 회개의 기도, 간구의 기도, 아픈 교인들과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어려움에 있는 가족과 자녀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에 꼼짝 못 하시는 이유는, 하나님 바로 곁에 예수님께서 앉으셔서 하나님 오른쪽 귀에 대고 끊임없이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은사가 충만한 사람"에 대하여
- "저 목사님은, 저 장로님은, 저 교인은 기도의 은혜가 충만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믿음이 충만한 것이다.
- 누가 기도하든 하나님은 사람의 기도나 사람의 경건에 좌우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분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의 은혜 안에서 구할 때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반드시 응답하신다.
- 기도 생활, 말씀 생활, 신앙생활이 깊어질수록 내가 높아지는 것은 사탄의 시험이다.
- 기도를 열심히 하고 응답이 많아질 때마다 경험해야 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이 이런 큰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는 것이다. 그것이 기도의 은혜 안에 사는 사람이다.
7. 참고자료
설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설교에서 직접 말씀하신 내용이 아닌 부분은 성경 본문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성경 연구 자료에 근거했습니다. 연대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 "약"으로 표기했습니다.
7-1. 역사 배경
요압과 관련된 사건의 흐름 (다윗 통치 주전 약 1010~970년)
| 시기 | 사건 | 성경 |
|---|---|---|
|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왕일 때 | 기브온 싸움에서 아브넬이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임. 아브넬은 쫓아오는 아사헬에게 물러가라고 거듭 말했으나 듣지 않자 창 뒤끝으로 찔렀다. | 삼하 2:12-23 |
| 헤브론 통치 말기 | 아브넬이 다윗과 언약을 맺고 평안히 돌아감. 요압이 다윗 몰래 그를 다시 불러 헤브론 성문에서 조용히 말하려는 듯 데려가 배를 찔러 죽임. | 삼하 3:12-27 |
| 같은 때 | 다윗이 아브넬을 위해 애곡하고 "내가 기름 부음 받은 왕이지만 오늘 약하여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렵다.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 대로 갚으실 것"이라고 말함. | 삼하 3:28-39 |
| 다윗 통치 후기 | 압살롬의 반란 뒤 다윗이 아마사를 요압 대신 군사령관으로 세움. 세바의 반란을 진압하러 가던 길에 요압이 기브온의 큰 바위 곁에서 입 맞추며 인사하는 척하다가 칼로 찔러 죽임. | 삼하 19:13, 20:4-10 |
| 다윗 말년 |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 함. 요압과 아비아달이 그를 지지. 솔로몬이 왕으로 세워지자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잡음. | 왕상 1장 |
| 솔로몬 즉위 직후 | 다윗의 유언, 아도니야 처형, 아비아달 파면, 요압 처형. | 왕상 2장 |
- 설교의 "7년간 남북 분열"은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만 다스린 7년 6개월을 가리킨다(삼하 2:11, 5:5).
- 설교의 "30년"은 어림수다. 아브넬이 죽은 때는 다윗의 40년 통치 가운데 헤브론 시기(처음 7년 반)의 끝 무렵이므로, 요압이 처형되기까지 30년 남짓 흐른 셈이다.
- 솔로몬은 아비아달에게 "네가 내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내 아버지가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다"는 이유로 죽이지 않고 고향 아나돗으로 보냈다(왕상 2:26-27). 설교에서 말씀하신 장면이다.
7-2. 지리
| 지명 | 설명 |
|---|---|
| 기브온 | 예루살렘 북서쪽 약 9~10km의 성읍. 솔로몬 초기에 모세의 성막과 브살렐이 만든 놋 제단이 이곳 산당에 있었다(대상 16:39, 대하 1:3-6). 아사헬이 죽은 싸움과 아마사가 죽은 곳도 기브온이다. |
| "여호와의 장막" | 본문(왕상 2:28)은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했다고만 적고 지명은 밝히지 않는다. 기브온의 성막으로 보는 견해와, 다윗이 예루살렘에 언약궤를 위해 친 장막(삼하 6:17)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설교는 기브온으로 설명하셨다. |
| 헤브론 | 예루살렘 남쪽 약 30km. 다윗이 유다 왕으로 다스리던 곳이자 아브넬이 죽은 곳. 헤브론은 도피성 가운데 하나였다(수 20:7). |
| 아나돗 | 예루살렘 북동쪽 가까이에 있는 제사장 성읍. 아비아달이 쫓겨 간 고향. 훗날 예레미야의 고향이다. |
| 아이 | 여리고에서 올라가는 산지의 성읍. 아간의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첫 공격에서 패한 곳(수 7장). |
| 베다니 | 예루살렘 동쪽 가까이에 있는 마을. 나사로의 무덤이 있던 곳(요 11:18). |
7-3. 인물
| 인물 | 설명 |
|---|---|
| 요압 | 다윗의 누이 스루야의 아들, 곧 다윗의 조카(대상 2:16). 형제는 아비새와 아사헬. 다윗의 군사령관으로 평생 큰 공을 세웠으나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고, 다윗의 명령을 어기고 압살롬도 죽였다(삼하 18:14). |
| 아브넬 | 넬의 아들, 사울의 친족이자 사울 군대의 사령관. 사울이 죽은 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웠다(삼하 2:8-9). |
| 아마사 | 다윗의 누이 아비가일의 아들로 요압과는 사촌 사이(대상 2:17). 압살롬의 군사령관이었으나 다윗이 그를 용서하고 요압 대신 세웠다. 자막의 "아마샤"는 훗날의 유다 왕 아마샤와 다른 인물이므로 '아마사'로 적었다. |
| 이스보셋 | 사울의 아들. 사울이 죽은 뒤 북쪽 지파들의 왕이 되었다. |
| 아비아달 |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사울이 제사장들을 학살할 때 홀로 살아 다윗에게로 도망해 평생 함께했다(삼상 22:20-23). |
| 아도니야 | 다윗의 넷째 아들. 왕이 되려다 실패했고, 솔로몬 즉위 뒤 다윗의 시중을 들던 아비삭을 아내로 구했다가 처형되었다(왕상 2:13-25). |
| 브나야 | 여호야다의 아들. 다윗의 호위 부대 지휘관이었고 요압 뒤를 이어 군사령관이 되었다. |
| 아간 | 유다 지파 사람. 여리고의 전리품(외투, 은, 금덩이)을 숨겼다가 제비뽑기로 드러났고,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였다"고 자백한 뒤 아골 골짜기에서 죽었다(수 7:16-26). 아이 성 첫 공격에서 죽은 이스라엘 군사는 36명쯤이다(수 7:5). |
| 나사로 | 베다니에 살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라버니. 죽은 지 나흘 만에 예수님이 살리셨다(요 11:1-44). |
| 칼빈 | 16세기 제네바의 종교개혁자 장 칼뱅. 여호수아 주석은 그의 마지막 시기 저작으로 알려져 있다. |
7-4. 문화
제단 뿔
- 성막 번제단의 네 모서리에는 뿔처럼 솟은 부분이 있었다(출 27:2). 제물의 피를 여기에 바르기도 했다.
- 제단은 거룩한 곳이므로 그 뿔을 잡은 사람은 함부로 죽이지 않는 관습이 있었다. 아도니야가 그렇게 해서 목숨을 건졌다(왕상 1:50-53). 그때 솔로몬은 "그가 선한 사람이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겠지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을 것"이라고 했다.
- 그러나 이 보호는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를 위한 것이다. 고의로 죽인 사람은 제단에서라도 끌어내라는 것이 출애굽기 21:14이고, 도피성 제도도 같은 원리다(민 35:9-34, 신 19:1-13).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출애굽기 21:23-25, 레위기 24:19-20, 신명기 19:21에 나온다. 받은 피해보다 더 크게 갚는 끝없는 보복을 막고, 재판에서 책임의 크기를 피해만큼으로 제한하는 원칙으로 이해된다. 설교에서 "처벌의 한계를 규정한 것"이라고 하신 뜻이다.
속죄 제사의 절차
- 제물을 드리는 사람이 짐승의 머리에 손을 얹고(안수), 드리는 사람 자신이 그 짐승을 잡았다. 제사장은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는 일을 맡았다(레 1:4-5, 4:27-31). 설교에서 "양을 데리고 간 내가 죽인다"고 하신 근거다.
- 번제에서는 제물의 각을 떠서 제단 위에 벌여 놓았다(레 1:6-8).
무덤과 "나흘"
나사로는 굴에 돌을 막은 무덤에 있었고, 마르다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했다(요 11:39). 죽음이 완전히 확정된 상태였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7-5. 신학 용어
| 용어 | 풀이 |
|---|---|
| 죄책(罪責) | 죄를 지은 데 따르는 책임, 곧 그 죄 때문에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질 의무. 설교의 "죄에 대한 책임"이 이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
| 회개(悔改) | 죄를 깨닫고 뉘우쳐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 설교는 회개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회개 자체가 용서의 근거(값)는 아니라고 구별했다. |
| 전가(轉嫁) | 책임을 다른 이에게 옮겨 지우는 것. 내 죄의 책임이 제물에게,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옮겨진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고후 5:21). |
| 대속(代贖) | 대신 값을 치르고 건져 내는 것. 예수님이 우리가 받을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다는 뜻. |
| 하나님의 어린 양 |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한 말(요 1:29). 유월절 어린 양과 이사야 53장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을 배경으로 한다. |
| 보혈(寶血) | 보배로운 피. 죄를 씻는 예수님의 피를 높여 부르는 말. |
| 중보(仲保) | 둘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는 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말씀은 로마서 8:34, 히브리서 7:25에 있다. |
| 참회의 기도·사죄의 선언 | 예배 순서. 회중이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면, 목회자가 성경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이 죄를 용서하심을 선포한다. |
| 보응(報應) | 행한 대로 갚으시는 것.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롬 2:6). |
|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 |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는 말씀. |
|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 누가복음 18:1-8의 비유.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신 말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마태복음 7:7-11. |
| 작정 기도·철야 기도 | 날수를 정해 놓고 드리는 기도, 밤을 새워 드리는 기도. |
| 스올 | 구약에서 죽은 자가 가는 곳, 무덤을 가리키는 말(왕상 2:6). |
8. 정리하며 확인할 점
- 영상 자동 자막의 인식 오류로 일부 표현과 고유명사,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은 성경 본문(개역개정)에 맞추어 바로잡았습니다. 설교자의 표현과 미세하게 다를 수 있습니다.
- 자막의 "아마샤"는 본문(왕상 2:5, 32)에 따라 아마사로 적었습니다.
- 예배 순서를 말씀하신 부분의 자막 "사의 기도", "사제의 선언"은 문맥에 따라 '죄를 고백하는 기도', '사죄의 선언'으로 정리했습니다.
- 요압이 도망한 곳을 설교에서는 기브온(약 10km)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은 "여호와의 장막"이라고만 적고 있어 기브온으로 보는 견해와 예루살렘의 장막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제단 뿔을 잡은 곳도 본문에는 지명이 나오지 않습니다.
- 본문에서 요압이 직접 한 말은 "내가 여기서 죽겠다"(2:30)뿐입니다. 6-4의 "나는 주동자가 아닙니다…"는 목사님이 요압의 속마음을 풀어 설명하신 것입니다.
- 아브넬이 죽은 곳을 성경은 헤브론 성문 안으로 기록합니다(삼하 3:27). "30년", "7년"은 설교에서 말씀하신 어림수입니다.
- 칼빈의 아간 주석 내용은 목사님이 설교에서 소개하신 대로 옮긴 것이며, 주석 원문을 대조한 것은 아닙니다.
- 2~4장과 6장(설교 흐름·결론·기도 제목·설교 내용 정리)은 설교에서 실제로 말씀하신 내용만 담았고, 7장 '참고자료'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인 배경 설명입니다.
- 참고자료의 연대는 학자에 따라 견해가 조금씩 다릅니다.